노란봉투법 (직접교섭, 재심청구, 사용자성)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이후, 하청 노조 1,121곳이 원청 424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는 보도를 봤을 때 솔직히 저는 이 숫자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그냥 "노동법이 바뀌었구나" 정도로 넘겼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건 단순히 법 하나가 바뀐 게 아니라 수십 년간 굳어온 원하청 구조를 흔드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직접교섭, 왜 지금 이렇게 많아졌을까

솔직히 저는 예전에 원청과 하청의 관계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큰 회사가 일감을 주고, 작은 회사가 받아서 처리하는 구조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다릅니다. 하청 노동자가 일하는 장소, 업무 방식, 생산 일정, 단가까지 원청의 결정이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청 노동자가 근로조건을 개선하려 할 때 하청업체 사장님만 붙잡고 이야기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렸습니다. 이 법은 쟁의행위(爭議行爲), 즉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파업이나 태업 등의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범위를 제한하고,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團體交涉)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넓혔습니다. 단체교섭이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을 협의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결과적으로 법 시행 이후 직접교섭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흐름이었습니다. 그동안 법적 근거가 약해서 요구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셈입니다. 제 경험상 어떤 권리든 법적 보호막이 생기는 순간 행사하려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상황도 그 흐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특히 자동차, 조선, 건설처럼 협력업체가 수백 곳씩 얽혀 있는 산업에서 이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심청구가 쏟아지는 이유, 기업 입장도 들어봐야 합니다

직접교섭 요구가 늘자 원청기업들은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의 결정에 반발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청구(再審請求)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심청구란 행정기관의 1차 결정에 불복해 상급 기관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중노위 결정에도 불복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분쟁이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출처: 매일경제)

저는 기업 입장을 무조건 옹호하는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원청이 모든 하청 노조와 직접교섭을 해야 한다면, 교섭 상대가 수백 곳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은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협력업체가 많은 대형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경영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처럼 취업을 앞두고 있는 20대 입장에서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신규 투자나 외주 계약을 줄인다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재심청구가 쏟아지는 배경에는 사용자성(使用者性)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용자성이란 어떤 기업이 노동자에 대해 법적인 사용자 책임을 지는 주체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노조는 최대한 넓게 요구하고, 기업은 최대한 부인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 결과 실제 노동조건 개선보다 소송 비용만 쌓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노동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판정례를 보면 원청의 지배·개입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법의 취지도 무너집니다

이번 갈등을 보면서 제가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지금까지의 구조에서는 원청이 생산 단가와 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법적 사용자 책임에서는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문제의식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기준이 모호한 채로 제도가 운영되면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구체화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 근로조건"에 한해서만 교섭 의무를 지우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2.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세분화된 기준이 필요합니다. 자동차와 건설, 조선은 원하청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적용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3. 분쟁 조정 절차를 단축해야 합니다. 지노위, 중노위,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장기전은 노동자에게도 기업에게도 소모적입니다.
  4. 쟁의행위(爭議行爲)의 정당성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쟁의행위란 파업, 태업, 직장 점거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집단적 행동을 뜻하는데, 이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기준이 불분명하면 현장 갈등은 더 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제도든 "좋은 취지"만으로는 현장을 바꾸지 못합니다.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면 결국 해석 싸움이 됩니다. 그리고 해석 싸움은 자원이 많은 쪽이 유리합니다. 노동자가 아니라 법무팀 규모가 큰 대기업 쪽이요. 그래서 저는 노란봉투법의 성패가 법의 취지가 아니라 기준의 명확성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라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요구가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교섭 상대와 범위가 먼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처럼 기준이 불분명한 채로 교섭 요구가 폭증하면, 노동자들이 얻는 것보다 소송에 지치는 것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갈등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노동자 편이냐 기업 편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예측 가능한 룰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점입니다. 하청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 두 가지는 사실 충돌하는 게 아닙니다. 기준이 명확해야 양쪽 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교섭 요구가 아니라 더 정교한 제도 보완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mk.co.kr/news/economy/1206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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