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화 (계절감각, 속도조절, 기후위기)

솔직히 저도 처음엔 자연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거창한 국립공원이나 해외 여행지 사진을 보며 막연히 '좋다'고 느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5살이 되고 취업 준비와 돈 걱정이 쌓이면서, 아침에 집 앞을 나섰을 때 공기가 어제보다 조금 차가워진 것을 처음으로 의식하게 됐습니다. 그 감각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놨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멀리 가야 느낀다'고 하지만, 제 경험은 달랐습니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려면 캠핑을 가거나 산을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실제로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강하게 느낀 순간들은 전부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퇴근 후 집으로 걸어오는데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장마가 끝난 직후 도로에서 올라오는 습기 섞인 냄새, 겨울 아침에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것을 처음 확인하는 순간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감각들을 생태감수성(ecological sensitivity)이라고 부릅니다. 생태감수성이란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먼저 인식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에서 잠깐 눈을 떼는 것만으로도 회복되는 감각입니다. 20대는 유독 화면을 많이 보는 세대라 이 감각이 무뎌지기 쉬운데, 저도 의식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자연과 단절된 채 지나가는 날이 많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생물계절학(phenology)과도 연결됩니다. 생물계절학이란 기온, 일조량 변화에 따라 식물이 꽃을 피우고, 동물이 이동하며, 곤충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벚꽃이 언제 피는지', '제비가 언제 돌아오는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분야입니다. 이 데이터를 보면 최근 수십 년 사이 꽃이 피는 시기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벚꽃이 피는 시기도 어릴 때 기억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4월 초면 절정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3월 말에 이미 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실제 변화입니다.

'자연은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 절반은 맞고 절반은 부족합니다

자연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라는 걸 직접 느껴봤습니다. 여름 저녁에 한강변에서 노을이 강하게 물드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저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통제 불가능함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이것은 주의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으로 설명됩니다. 주의회복이론이란 자연환경이 인간의 집중력을 소모시키지 않으면서도 뇌를 자극해 피로를 회복시킨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취업 준비, 인간관계, 미래 계획처럼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친 뇌가, 자연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에서도 녹지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단순히 '힐링 공간'으로만 보는 시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편하고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폭염, 폭우, 산불이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은 계절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습니다.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여름은 더 길고 더 뜨거워지는 느낌입니다. 이건 개인의 감상이기도 하지만, 실제 기후 데이터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속도조절의 감각을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꽃은 하루 만에 피지 않는다. 봉오리가 부풀다가 며칠에 걸쳐 열린다.
  2. 단풍은 한꺼번에 물들지 않는다. 나무 꼭대기부터 아래로, 천천히 내려온다.
  3. 해는 매일 같은 것 같지만, 뜨고 지는 시각이 하루 1~2분씩 달라진다.
  4. 계절의 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공기 온도와 햇살의 각도가 조금씩 바뀌면서 쌓인다.

이 목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제 삶의 변화도 너무 조급하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20대에 모든 게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닌 것처럼요.

자연을 '감상'으로만 소비하면 기후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을 단순히 마음을 재충전하는 배경으로만 보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비판적입니다. 아름다운 노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으로 자연과의 관계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탄소발자국이란 개인이나 조직이 일상에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뜻합니다. 자동차 이용, 육류 소비, 항공 이동, 전력 사용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OECD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일상 속 소비 습관이 기후변화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단순한 감성 소비가 아니게 됩니다. 봄이 점점 짧아지고, 여름이 더 길어지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그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 평균 기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매년 체감하는 계절의 감각이 달라지는 것과 연결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자연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노을이 예쁘면 예쁜 대로 즐기면 됩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예전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변화의 이유를 한 번쯤 떠올리는 것이 지금 시대에 자연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의 변화는 저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줍니다. 하나는 지금 이 속도로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이고, 다른 하나는 이 풍경이 계속 이어지려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공기 온도를 한 번만 의식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작은 감각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 참고: https://cpa.ca/psychology-works-fact-sheet-benefits-of-nature-expo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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