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C레벨 영입 (스타트업, 인재전략, IPO)

올해 국내 스타트업 5곳이 글로벌 빅테크 출신 C레벨 인재를 잇달아 영입했습니다.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말이 넘쳐나는 시점에 오히려 사람에게 더 많이 투자하는 이 흐름을 보면서, 저는 "AI 대체론이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스타트업이 지금 C레벨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스타트업 업계를 보면 요즘 이상한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AI가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들이 사람을 더 데려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반 직원이 아니라 CBO, CFO, COO, CSO 같은 최고위 임원급 인재들입니다.

GTM(Go-To-Market)이란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어떤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선보일지 결정하는 사업 전략을 뜻합니다. 이 전략을 실제로 실행해본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 있어도 고객까지 닿기 어렵습니다. 마크비전이 아마존·틱톡·깃허브 출신 리더 5명을 한꺼번에 데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일즈, 플랫폼, 고객 성공, 인사, 재무까지 핵심 포지션을 동시에 채운 것은 단순한 충원이 아니라 조직의 설계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제가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소수 정예로 빠르게 움직이는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창업자의 기술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어떤 시장에 먼저 들어갈지, 투자자에게 어떻게 회사의 미래를 설명할지, 글로벌 파트너십을 어떻게 만들지 같은 문제들은 경험 없이 접근하면 시행착오 비용이 너무 큽니다.

리벨리온 사례가 보여준 인재전략의 본질

제가 이번 기사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사례는 리벨리온이었습니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라면 기술이 전부일 것 같지만, 실제로 이 회사가 영입한 인재들의 면면을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NPU(Neural Processing Unit)란 AI 연산, 특히 학습된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는 추론 작업에 최적화된 반도체입니다. 일반 CPU나 GPU와 달리 AI 워크로드에 특화되어 있어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은 바로 이 NPU를 미국, 일본, 중동 시장에 팔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NPU를 만드는 것과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업에 NPU를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오라클·HP 출신 다이애나 웡을 글로벌 마케팅 선임 부사장으로, 삼바노바시스템즈 CCO(최고고객책임자) 출신 마샬 초이를 CBO(최고사업책임자)로 영입한 것은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한 선택입니다. CCO란 기업의 고객 관계 전반을 총괄하는 임원으로, 고객 확보부터 유지까지 사업의 수익 구조를 직접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제 경험상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고객을 설득하는 언어와 방식이 없으면 B2B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주변에서 많이 봤거든요.

이번에 영입된 리벨리온의 C레벨 인재들이 보유한 AI 반도체·엔터프라이즈 인프라 분야 경력은 모두 20년 이상입니다. 스타트업이 수십 년의 실전 경험을 단기간에 내재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직접 데려오는 것밖에 없습니다.

IPO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 CFO가 필요한 이유

업스테이지와 갤럭스의 사례는 또 다른 맥락에서 흥미롭습니다. 이 두 기업의 공통점은 IPO(기업공개), 즉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IPO란 비상장 기업이 일반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공개 매각하고 증권거래소에 등록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서류를 내는 것이 아니라 회계 체계, 내부통제, 공시 역량, 투자자 커뮤니케이션까지 조직 전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갤럭스가 영입한 김성현 CFO는 안진회계법인, 유한킴벌리, 대웅제약 재무팀장, 바이오벤처 CFO를 거친 인물입니다. 회계법인과 제약사, 바이오벤처를 모두 경험한 이력은 AI 신약 기업의 상장 준비에 딱 맞는 조합입니다. 갤럭스는 연내 기술성평가를 신청해 2027년 하반기 증시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업스테이지는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출신 진윤정 상무를 CFO로 영입하고, 기존 C레벨을 CSO(최고전략책임자)와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재배치해 6인 C레벨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COO란 기업의 일상적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임원으로, 조직이 커질수록 CEO가 전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행을 책임지는 역할입니다. 이런 체계를 갖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타트업의 성장이 단순히 매출이 느는 것만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 자체가 진화하는 과정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스타트업이 IPO를 앞두고 C레벨 체계를 정비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무·회계 체계와 내부통제 강화: 상장 심사에서 가장 먼저 점검하는 영역으로, 공인회계사 출신 CFO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2.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기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상대하는 언어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3. 사업 전략의 체계화: 기업공개 이후 성장 스토리를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CSO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4. 글로벌 파트너십 확보: 상장 전후 해외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검증된 영업 네트워크를 가진 CSO·CBO가 필요합니다.

C레벨 영입이 무조건 성공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 흐름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글로벌 빅테크 출신이 오면 다 잘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렇게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통하던 방식이 스타트업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라클이나 아마존에서 만든 GTM 전략은 수천 명의 인력과 수십 년의 브랜드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 방식을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그대로 이식하면 오히려 조직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빠른 실행력이 스타트업의 가장 큰 무기인데, 과도한 프로세스가 그것을 갉아먹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봤습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인재 영입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입니다. 유명 기업 출신 C레벨 영입 소식은 투자자와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줍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머니투데이, 2026.06.13)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출신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매출을 만들고 고객을 확보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AI 스타트업은 지금 "AI라는 이름을 붙였다"와 "실제로 돈을 버는 서비스가 됐다" 사이의 격차가 큰 시기입니다. 좋은 LLM을 만드는 것과 기업 고객이 매달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데이터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KISED)의 창업 동향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로 Series B 이상 성장 단계에서 외부 경영 전문가 영입이 생존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다만 영입 자체가 아니라 그 인재가 기존 조직 문화와 얼마나 잘 맞물리느냐가 관건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됩니다.

결국 AI 시대에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층위가 달라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복 업무는 AI가 빠르게 흡수하겠지만, 어떤 시장에 언제 들어갈지, 고객에게 어떤 언어로 이야기할지, 조직이 무너지지 않게 어떻게 설계할지는 경험에서만 나오는 판단입니다. 스타트업들이 C레벨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인건비를 더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실행 방식을 조직 안에 이식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다만 영입 소식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앞으로 1~2년을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기업들이 어떤 성과를 내는지 계속 관심 있게 보려고 합니다.

---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37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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